치국(治國)이냐 수신(修身)이냐.
영웅본색 (英雄本色, 잉슝뻔써~!)
그당시 수많은 청년뿐 아니라 중고딩들의 우상이었던 주윤발, 장국영(슬프게도 우리 곁에 없다.)에 열광하게 만들었던 최고의 영화였다.
홍콩 느와르를 주름잡던 유덕화가 삼국지, 묵공등의 중국 역사물 영화에 등장해서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주더니 이번에는 와호장룡을 비롯한 역사물로 변화된 연기를 보여준 주윤발이 또한 놀라게 했다.
'공자'
춘추전국시대에 고향인 노나라를 떠나 각 제후국을 돌며 온갖고생을 하다가 다시 곡부(취푸)로 돌아온 뚝심과 풍운의 사나이...
솔직히 영화자체는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솔직히 내심 많은 전쟁신도 기대했지만 애초에 '공자'라는 영화에서 그걸 기대한다는 것이 무식한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공자님의 말씀, 노력, 순수한 의도에 공감이 되는 작품이었다.
(한마디로 흥행성은 떨어진다는 뜻?)
영화를 보는 내내 김경일 교수님이 쓰신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떠올랐다.
검색해보니 2005년 출간인데 초판은 더 이전인 걸로 알고 있다. (책이 어디있을텐데...)
이에 대한 반박으로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책도 나온적이 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에 보면 우리가 동북아 3국 (한중일)중에 가장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중국은 공산당혁명,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많은 변화)
그런데 왠지 공자는 나쁜 사람이거나 자기만의 이상만을 고집한 노인네로 생각하는 식으로
비쳐질수도 있는데 전혀 그런것은 아니다.
소위 '공자님 말씀'은 좋은 말씀이 참으로 많지만 후대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활용했냐는
것이 중요하다.
수신 (修身) vs 치국 (治國)
조선왕조가 유교에 열광한 이유중 하나는 치국에 편리한 O/S였기 때문이다.
유교라는 O/S를 깔아두면 사람들이 충효(忠孝)라는 가치 때문에 알아서 말을 잘듣게되고
따라서 통치는 편리해 지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조선시대에도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성리학을 비롯한 여러 업그레이드
패치가 나오게 된것이다.
(분명 이는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소중한 자원이다. 그냥 오랜 인습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지도자인 나는 해도 되지만 너는 안된다"라는 식의 논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요즘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법치'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맞다. 법을 지켜야 우리 모두가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수 있는 기초가 마련된다.
하지만 그 법(法)이라는 것이 권력자에게는 쉽게 편집 또는 해석되고 사회적 약자에게는 무시
무시한 칼날이라면 그 O/S플랫폼 자체가 옳은지를 잘 볼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백성은 버리고 왕족의 위패를 모시고 피신간 여러 왕들이 있었고,
근대사에는 서울을 사수한다는 거짓말과 함께 피난간 이승만 대통령이 있었으며,
지금은 서민들에게만 혹독한 법의 칼날이 드리워진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한 아이가 탈출하여 공자의 제자에게 구출이 되고, 공자는 여러 대신들 앞에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계氏 "주인이 아끼던 몸종을 함께 묻으라는 분부가 있었고, 이는 우리의 전통이요."
공자 "그러시면 주인께서 아끼셨던 귀공도 함께 묻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결론적으로 그 아이는 구출이 된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사회는 어떤지 되돌아 볼일이다.
무릇 자신이 하기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했는데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해보자는 말이다. (이는 물론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하고싶은 질문이다.)
4대강이나 대북정책이나 나는 정확히 모른다. 실제 그 문제를 다루는게 업무인 사람도 있는데 내가 어찌 알겠는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통령과 정치권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무엇을 한다해도 많은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는 것이다.
그건 대통령도 정치인도 국민도 모두 피곤한 일이다.
느닷없이 '실미도'에서 안성기 님이 하신 대사가 생각난다.
"정치하는 분은 나라를 잘 다스리면 되고 군인은 나라 잘 지키면 되는 것 아닙니까"
지금의 한국은 치국(治國), 즉 사람들이 이렇게 움직이기를 원하는 노력을 많이 하는듯 하다.
법질서를 강조하고 대통령과 정치권이 알아서 할것이니 잘 좀 따르라고 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지도층도 스스로의 수신(修身)은 어느정도인지도 잘 생각해 주시기 바란다.
사람은 자신의 허물보다는 상대의 허물을 잘보게 되어있다. (그래서 택시기사님들이 최고의
정치평론가라는 농담을 하는 것이다.)
좌파,우파, 서민,기득권... 이런것은 사실 '대한민국' 그리고 '세계인'의 관점에서는 무의미한
것들이다. 서로가 자신의 허물을 잘 보고 지속적으로 '수신(修身)'하면 지금보다 나은 사회
(社會,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터전)가 되는 것이다.
리더십에 대한 강의를 원하는 기업이 많다.
때로 듣는 이야기가 바로 "나는 괜찮은데 직원들 좀 잘 인도해 주세요."이다.
반대로 직원들 강의를 해보면 "우리 부장님이 들어야 되는 소린데..."가 많다.
'Good to Great'에 나오는 Great Company의 장점중 하나는 '관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각자 자기 일을 잘하고 서로 신뢰한다는 것이다.
Good Company도 돈을 잘 버는 기업이다. 하지만 리더는 직원을 감시하고 직원은 리더의 눈치를 보며 입맛에 맞는 말을 주로한다. 이렇게 되다가 리더가 바뀌면 와르르 무너지는 기업사례도 많이 있다.
나도 글을 쓰며 반성해 본다. 남에게 이러쿵 저러쿵 말하기 쉬운 것이 강사이기 때문이다.
말한만큼 내가 얼마나 실천하는지, 얼마나 수신(修身)하는지 반성해 볼일이다.
수신(修身)이 딱딱한 말인듯 한데 이영애 누님의 대사를 빌리면 간단하다.
여야로 나뉘어 있는 정치 형태는 건전한 것입니다. 이 조건이 충족되면..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간다면 기원전에 돌아가신 공자님도 흐뭇한 미소를 다시 짓지 않을까?
Pe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