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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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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에 해당되는 글 2

  1. 2011/11/24 '김대한'씨네 가족 이야기. (1)
  2. 2011/11/08 정치, 국가, 그리고 어른들에 대한 예우.

'김대한'씨네 가족 이야기.

2011/11/24 12:51 | Posted by PeterHan

한번 이야기를 써보았습니다.  말그대로 김대한씨네 가족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쓰다보니 길어졌네요.  그냥 소설이니 소설로 읽어 주세요.

 

김대한 씨는 자녀와 손자가 엄청나게 많다.

이 집안은 오래전에 강건너에 있는 왜씨 가문에 의해 노예와도 같은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전씨가문(, 錢씨라고도 불리며 돈과 이재에 밝은 집안이다.) 을 중심으로 해방이 되면서 독자적인 삶을 간신히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전미국씨네와 왕중국씨네가 김대한씨의 두 할아버지를 데려가서 큰 할아버지가 김대한씨를 가졌고 둘째 할아버지가 김북한씨를 가졌다.  두집안은 원래 한가족이었음에도 전씨와 왕씨의 간섭 때문에 가까이 살면서도 원수처럼 지내게 되었다.

 

우여곡절을 거쳐 김대한씨네 가족은 어느정도 먹고 사는데 큰 걱정이 없을만큼 성장했다.  여전히 전미국씨네 머슴들이 와서 대한씨네 집을 지켜준다고 사랑채에서 거드름을 피우고 앉아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예전에 비해서는 상당히 괜찮게 살고 있었다.

 

물론 그 비결은 김대한씨와 그 자손들이 열심히 살아온 덕분이었다.  

김대한씨는 특이한 점이 있는데 바로 약 4~5년을 주기로 성격이 바뀐다는 것이다.  더 희한한 것은 바꾸고자 하는 성격을 몇가지 말하면 자식들이 그 중 하나를 결정 할 수 있다.  문제는 김대한 씨가 자식들에게 앞으로 4,5년간 보여줄 성격을 설명해 주고나서 선택이 되면 실제 행동은 그와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얼마전에는 김대한 씨가 집안 살림도 어려우니 돈버는 것을 우선으로 해서 해보자고 이야기를 했고 자식들은 그간에 힘들었던 경험을 고려해 그러자고 동의를 했다.

 

그런데 바로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막내와 아랫 자식들이 농사짓고 품팔아서 벌어온 돈을 첫째 아들에게 퍼주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큰아들은 가까운 동네 뿐 아니라 산너머에 있는 여러 마을에도 점포를 내고 큰 장사를 하고 있었다.  옛날부터 큰아들이 잘되어야 집안이 일어선다는 생각으로 김대한씨와 자식들은 큰아들의 성공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해온 터였다.   그런데 문제는 큰아들에게만 너무 신경을 쓰다보니 뒤이어 조그마하게 장사를 시작한 자식에게는 거의 신경을 써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큰아들이 동생들 사업에서 괜찮다 싶은 것들이 있으면 뺏어오기 까지 했지만 김대한씨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둘째, 셋째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집안의 대소사를 김대한씨와 함께 결정하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둘째는 아버지의 뜻에 따르고자 노력을 많이했고, 셋째는 가급적이면 동생들의 생활에 어려움이 없을까 고민하며 필요하면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기도 했다.  그리고 말도 잘하고 글도 잘쓰는 넷째는 아버지와 둘째, 셋째가 결정한 일들을 동생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김대한씨가 넷째에게 좋은 컴퓨터와 전화기를 네대씩 더 사주자고 말을 했는데 셋째가 끝까지 반대했지만 둘째와 함께 독단적으로 결정해 버렸다.

 

바로 얼마전, 김대한씨네 큰일이 터졌다.

그 옛날 김대한씨를 도와주었던 전미국씨네 집안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내용은 물건 거래와 돈 거래를 더 자유롭게 하자는 내용이었다. 

전미국씨네 집안을 잠시 살펴보자.  이 집안은 대대로 쩐, 그러니까 돈 공부를 많이 해온 자식들이 많다.  오죽하면 시장에 통용되는 화폐, 그리고 그 화폐가 거래되는 방식도 이 전씨네 집안에서 대부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씨네 사투리를 쓰면 멋져 보여서 아낙네 사이에 인기가 올라가는 일도 발생되었다.   이 전씨네 집안에는 우환이 있는데 일단 첫째부터 열번째 쯤의 자식까지는 전미국씨가 ‘1%’라고 불러주며 풍족하게 잘 살아왔다.  그런데 ‘99%’라고 스스로 말하는 나머지 자식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먹고살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이었다.   먹고 살기 힘들면 아버지가 챙겨줘야 되는데 그다지 챙겨주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 전미국씨의 제안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김대한씨는 전미국씨네가 자기와 더 가깝게, 편하게 교역하면서 친해지자고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동봉한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려고 했다.

그랬더니 평소 아버지 말을 자주 거스르던 셋째가 반대하고 나섰다.  그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농사짓고 품팔고 있는 동생들에게 더 큰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게 이유였다.

첫째 아들은 즉시 반발했다.  교역이 많아지면 사업이 잘되고 돈을 많이 벌어서 우리 모두에게 좋은건데 왜 반대하느냐는 것이었다.  셋째는 항변했다.  첫째 사업 잘되서 돈은 많이 벌었는데 그게 동생들과 제대로 분배가 된 것이냐는 것이었다.   같이 공부를 많이 한 둘째가 셋째를 설득하고 나섰다.  말을 안듣자 협박을 하기도 했다.  셋째가 집안 말아먹는 놈이라고 욕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김대한씨가 넷째를 불렀다.   전미국씨와 협의는 잘 되어야만 하는 것이니 당분간은 동네에서 일어나는 잔치 소식이나 애들 좋아하는 연극 소식 같은 것에만 집중되게 하라는 것이었다.   전미국씨와 협의가 끝나면 모두에게 좋은 일일 것이니 걱정말라는 말만 하면 된다고 언질까지 해두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첫째, 둘째, 셋째보다도 까마득하게 어리고 조그만 녀석이 동생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이녀석 이름은 꼼수  작지만 당차고 똘똘한 녀석이다.   꼼수가 전미국씨의 제안에 반대를 하고 나섰다.  심지어 셋째가 제대로 집안일을 못한다며 똑바로 하라고 훈수도 두고, 둘째야 말로 집안을 말아먹을 사람이라고 욕을 하고 나섰다.   지금까지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혼자 전달하고 전해주었던 넷째가 당황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주는 정보 이외에 이 꼼수라는 녀석이 주는 정보를 더 믿는 동생들이 점점 늘어났기 떄문이다.

얼마전에 드디어 동생들 중 몇몇이 아버지와 둘째,셋째가 이야기 나누는 마당 근처에서 읍소를 했다.  꼼수 얘기를 들어보니 전미국씨와의 교역은 시간을 두고 한번 생각해 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은 이미 아버지에 뒤이어 교역에 합의한다는 도장을 몰래 찍은 뒤였다.

 

도장을 몰래 찍었다는 소식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동생들이 마당에 나와 그러면 안된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대체 어떤 아비가 자기 자식들을 생각지 않고 중요한 것을 결정했느냐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었다.

그랬더니 김대한씨는 느닷없이 힘이 좋은 다섯째를 불렀다. 

그리고 다섯째는 머슴들을 동원해 양동이로 물을 퍼부으며 돌아가서 일이나 하라고 윽박 질렀다…..

 

이게 2011년 겨울에 벌어지고 있는 김대한씨네 집안일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김대한씨네 가족은 아픈 사연이 많은 집안이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이 집안의 이야기를 해보자.

 

김대한씨네 집안은 꽤 오랫동안 선조 할아버지 조선가로 오랫동안 맥을 이어왔다. 

그러다가 강건너 (동강, 東江이라고 부른다.) 에 사는 왜일본이라는 이웃집에서 조선가를 이유도 없이 다짜고짜 공격했다.  그리고 조선가에서 떠나기는커녕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조선가가 북쪽에 있는 왕중국씨네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서서히 이 집안 사람들을 머슴 부리듯 했다.   결국 조선가는 억지로 이름을 바꿔 대한이라고 했다.  대한으로 바뀌고 나서 이 집안 사람들은 왜씨 가족의 머슴이 되어 혼나고, 맞고, 빼앗겼다.  농사를 지어도, 품을 팔아 돈을 벌어와도 그 대부분은 왜씨 가문에 빼앗겼다.  왜씨는 대한씨네 땅이 얼마나 되고 어떤 특성이 있는지 까지도 조사했다.

 

그렇게 힘든 시절을 보내던 중, 멀리에 있는 전미국씨네 동네가 왜씨와 싸우기 시작했다. (사실은 왜씨가 전씨네를 시기 질투한 나머지 태평강에 있는 전씨네 배를 먼저 공격한 일이 있었다.)  이 전미국씨는 쩐씨라고도 부르는데 대대로 돈에 관련된 지혜가 발달해서 그 동네를 쥐락펴락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전씨네가 싸움을 워낙 잘해서 왜씨를 무릎 꿇려 버리고 왜씨는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당연히 김대한씨네 가족도 땅과 집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김대한씨의 사촌격인 김북한씨와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급기야는 두집안이 완전히 치고 받고 싸우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치고 받고 싸우는 중에 전미국씨가 안되겠다 싶어 김대한씨 편을 들어주며 싸움 잘하는 머슴들을 대거 보내 주었다.  그래서 대한씨네가 이기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왕중국씨가 전미국씨를 질투한 나머지 김북한씨 편을 들어 주었다.   결과적으로 두 집안은 반반씩 땅을 차지하기로 하고 잠시 쉬자는 계약을 같이 썼다.

 

그럼 이제 어려운 시절을 겪어온 김대한씨네 집안을 중심으로 얘기해 보자.

싸움이 끝나고 나서 김대한씨네는 집안 꼴을 살펴보았다.  오랫동안 왜씨네 머슴살이 하느라 남은 건 별로 없었고 북한씨네가 다시 쳐들어와도 막을 힘조차 없었다.  그래서 김대한씨는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된다.

우선은 싸움을 도와준 전미국씨.  그가 보내준 싸움 잘하는 머슴들을 좀 더 머무르게 해달라고 했다.  대한씨가 가진 땅중 좋은 곳을 골라 괜찮은 숙소를 마련해 머무를 수 있도록 하고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를 했다.

그리고 원수같던 왜씨네 집안에도 손을 내밀었다.  물론 왜씨네의 인색한 사과 표현을 받아들이고 나서였다.   그래도 배워야 되는 기술도 있고, 뺏어가서 축적한 돈도 있었기 때문에 원수같더라도 함께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이 왜씨네 집안하고는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조그마한 수상 낚시터하나의 소유권을 두고 싸우게 된다.)

당장 자식들이 굶어죽을 판이라 김대한씨는 어린 자녀들에게 다른 큰 마을에 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사내아이들은 저 멀리 구라파씨 집안이 있는 큰 마을에서 돌 캐내는 일을 하고, 딸아이들은 큰 마을 사람들의 간병을 해주는 일을 하게된다.   김대한씨가 한번 구라파씨네 집안에 갔다가 거기에 일하는 어린 자식들을 보며 눈물을 왈칵 쏟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하지만 왜씨네에서 빌린 자금, 전씨네의 원조, 어린 자식들의 품팔이로는 집안을 일으킬 수 없었다.   그래서 큰아들 기업이를 중심으로 장성한 아이를 성공시키기로 했다.

우선 큰 아들은 제일 중요한 가업을 만들도록 했다.  동생들이 농사짓고 품팔아 온 돈을 일단 큰아들에게 주었다.  어떻게든 밑천은 마련해 줄 테니 한번 해보라고 격려해 주었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여러가지 큰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똑똑한 둘째와 셋째는 공부를 시켰다.  둘째 여당이는 말을 잘 듣고 셋째 야당이는 말을 잘 안듣는 아이였다.  사실 갈등이 많기는 했지만 여당이와 야당이는 언제나 함께 모여 있었다.

말 잘하고 글 잘쓰는 넷째 언론이는 온 동네에 들리는 대형 스피커와 글을 찍어낼 수 있는 등사기를 주며 앞으로 일어나는 집안의 대소사를 가족 전체에게 알리는 일을 하라고 했다.

힘이 좋은 다섯째 검경이에게는 공권력이라는 힘을 주며 집안에 말 안듣거나 술마시고 행패부리는 녀석들 버릇 고치는 일을 하라고 했다.  특히나 다섯째에게는 힘이 좋은 동생과 머슴들을 많이 붙여 주었다.

 

김대한씨, 이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독특한 성격이 있었다.

이 사람의 성격은 4,5년에 한번씩 바뀌어 완전히 딴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더 이상한 것은 바뀔 때가 되면 자식들을 다 불러모아 어떤 성격이 되면 좋겠냐고 물어보고 그 의견을 따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김대한씨가 이런 성격이있다고 설명할 때는 모두 좋은 성격인 것 같은데 막상 자식들이 결정한 후에는 설명했던 것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돌변한다는 것이었다. 

 

왜씨에게서 해방이 되고나서 김대한씨는 혼란스러운 성격장애를 겪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흘러서야 중요한 결정을 했던 것이다.   어린 애들을 구라파씨네에 품팔이 보내고, 왜씨와 협력을 하고, 전미국씨네에 원조를 받는 어려운 결정들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새집안을 만들자고 새집안운동도 열심히 했다. 

자식들에게 이 아버지는 엄격하고 무서웠지만 집안을 잘 단속해 주고 아이들 몰래 눈물을 흘리는 좋은 아버지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아버지는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했다.  큰아들에게만 너무 혜택을 주고, 둘째 셋째가 조금이라도 다툰다 싶으면 입을 막아 놓고 자기가 결정했으며, 넷째 아들이 집안에 무슨 말을 하고 무엇을 쓰는지를 하나하나 감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급기야 어린 자식들을 중심으로 아버지 이러시면 안됩니다라고 외치며 마당으로 나와 읍소를 하고 몇몇은 돌을 던지기까지 했다.  물론 폭력적이 되어버린 아버지는 그런 자식들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센 다섯째를 불렀다.  다섯째와 머슴은 동생들을 마구 두드려 팼다.  심지어 숨이 끊어진 동생도 있었다.  훗날 알게 된 것이지만 이 머슴중에는 다른 동네가 쳐들어 오면 막으라고 훈련시킨 무시무시한 머슴도 상당수 끼어있었다.

 

80년쯤이 되어 김대한씨는 여전히 폭력적이고 독단적이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집안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이끌어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3S라는 거였다.  이것은 Sports, Sex, Screen이라는 전미국씨네 사투리를 빌려온 표현이었다.   우선 족구, 축구, 야구등 여러가지 운동 대회를 개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홍등가를 만들어 남자들을 정신 팔리게 했다.  마지막으로 공연이나 마당놀이를 많이 만들어 냈다.  한마디로 자식들이 일을 열심히 하고 남는 시간에는 무조건 노는데 푹 빠지도록 한 것이었다. 

그렇게 자식들이 노는데 빠져 있는 동안 김대한씨는 첫째 기업이, 둘째 여당이, 넷째 언론이 (말 안듣는 셋째는 빼고)와 함께 실컷 쓰고, 자기 곳간을 따로 만들어 딴살림을 차릴 채비를 했다.

 

그 시절에 반항하다가 죽도록 얻어맞고 실려나가는 자식도 엄청났다.  하지만 넷째 언론이는 그런 이야기는 쏙 빼놓고 매일 저녁마다 아버지 김대한씨가 무엇을 잘하셨는지만을 이야기했다.  어쨌든 그 시절에는 곳간에 꽤 먹을것이 넉넉했고 다들 나름대로 먹고 살만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돈이 많아지니 다른 동네로 놀러다녀도 좋다는 허락도 내려졌다.

 

그러다가 90년말이 되어 문제가 터졌다.  알고보니 곳간이 비어있는 것이었다.

그동안 김대한씨네 가족은 너나 할 것없이 놀러다니고 돈을 썼다.  김대한씨와 첫째, 둘째, 넷째가 각자 자기 곳간을 만들어 놓고 그 곳간을 채우는 것도 몰랐다.  똑똑한 둘째 여당이가 자기를 중심으로 한 이들에게만 유리한 가훈과 집안 단속 규범을 고쳐왔는데도 몰랐던 것이다.  한때 정신 못차린 셋째 야당이도 여기에 동참했던 적도 있다.

 

어쨌든 곳간이 비어있다는 것을 알게된 이후로 김대한씨 자식들은 모두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많은 자식들의 머릿속에는 역시 첫째 큰형이 돈을 잘 벌어야 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넷째가 그런 말을 많이 했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곳간을 채우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병들고 쓰러지는 자식들도 많았다.  꽤 괜찮은 점포를 운영하다가 망해서 어쩔 수 없이 품팔이를 하거나 길거리에 나앉은 자식도 많았다.

그간에 김대한씨는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자식들이 새로운 아버지의 새로운 성격을 선택할 때 그쪽을 택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챙겨야 겠다는 생각을 겨우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자식들이 어떻게 힘든지를 물어보고 해결해 주려고 노력했다.  사실 현명하게 모든 것을 잘 처리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의 진심이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아버지의 성격이 갑자기 바뀌자 첫째, 둘째, 넷째 아들은 당황했다. 

원래 각자가 자기 곳간을 가지고 채우는 방향으로 갔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돌변해서 어린 자식들을 챙기자는 말과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장성한 자식들은 아버지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닌가 의심했다.  그리고 지금껏 그런 적이 없었는데, 아버지를 욕하기 시작했다. 

사실 여기엔 그럴만한 이유도 있었다.

 

첫째만을 중심으로 집안의 가업과 장사를 해왔는데 이제 와서 첫째에게만 주었던 혜택들을 줄이자는 거였다.  예전에는 사업을 막 저질러 놓고 안되면 아버지가 보전해 주었다. (물론 어린 자식들이 벌어온 돈으로 보전해 줬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용돈을 듬뿍듬뿍 드리면 잘못된 짓을 해도 많이 눈감아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둘째 여당이는 완전히 화가 나있었다.  그간에 찍소리도 못하던 셋째 야당이가 아버지와 주로 얘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린 동생들에게 좋은 일을 하자고 하고, 자기는 쏙 빼놓고 결정을 하는 것이었다. 

넷째 언론이는 이제 대놓고 아버지를 욕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성격상의 문제점을 부풀려서 이야기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먼 친척이 되어버린 김북한씨네 가족을 여기에 끌어들여오려 한다는 이야기도 퍼뜨렸다.   그럴수 있었던 것은 넷째 입장에서 아버지보다 용돈을 많이 주는 첫째, 자기에게 유리한 집안 법규를 바꿔주는 둘째형의 의견이 훨씬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넷째의 이야기와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다보니 적지 않은 자식들이 지금의 아버지의 성격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제로는 다시 먹고 살만큼이 되었는데도 넷째는 아버지 때문에 너무너무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을 끊임없이 했다.  사실 예전만큼 누리지 못하는 것은 첫째, 둘째, 넷째 였는데 하도 그런 소문이 돌다보니 대부분의 자식도 그렇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는 자식들을 불러다 놓고 이제 성격을 바꿀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크게 두가지 성격을 제안했다.  하나는 돈을 잘 벌어다주는 아버지가 되겠다였고 또 하나는 정의로운 아버지가 되겠다였다.

자식들은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소문에 비춰보면 아버지의 무식하고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  다 아버지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체 정의로운 아버지라는 건 무슨 얘긴가?  밑도 끝도 없이 정의로운 아버지가 되겠다는게 무슨 말이지??  알수가 없어.  그리고 정의로운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아냐아냐, 우리가 더 잘먹고 잘 살려면 돈을 잘 벌게 해주는 아버지가 좋아.

 

대부분의 자식들이 이렇게 생각했고 결국 아버지는 돈을 잘 벌어다 주는 아버지의 성격을 갖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 결정 이후로 아버지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갑자기 셋째 야당이를 내팽개치고, 지난 8년간의 자기행동이 너무나 비상식적이었다는 것이었다.  지난 8년간의 자기 모습을 철저하게 부인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간에 용돈을 많이 주었던 첫째 기업이에게 못갚은 빚을 열심히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첫째에게 도움이 되는 밑천 쉽게 대주기, 기어오르는 동생들에게 겁주기, 넷째와 협력해서 사업 키우기 등등을 격려해 준 것이다.

그리고 넷째와 다섯째에게도 권한을 더 쥐어주면서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잘 전달하라고 이야기를 했다.

얼마 안되어 전미국씨가 자기네 소고기를 싸게 줄 터이니 사달라고 요청을 해왔다.  그런데 이 소고기는 안전성을 믿기가 어려워 다른 동네에서도 잘 안사가는 물건이었다.   그러니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나쁜지 아닌지를 알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사실 농사나 일에 쓰는 연장이거나 집에서 쓰는 물건이면 좋은지 나쁜지도 쉽게 알수 있고 안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자식들과 손자들 먹일 먹거리인데 꺼림칙한 것을 선뜻 먹일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몇몇 자식들이 이럴수는 없다며 손자들과 함께 마당에 나와 시위를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상했다.  얼굴을 보여주고 대화를 할 줄 알았던 아버지는 안나오고 평소에 못살게 굴던 (가끔 친절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다섯째 형이 눈을 부라리며 뛰쳐나온 것이다.

그리고 머슴들에게 양동이 가득한 물을 뿌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전씨네의 소고기는 김대한씨네 집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한동안 잠잠하던 왜씨네 집안에서도 시비가 들어왔다.  두 집안 사이에 동강(東江)이라는 큰 강이 있다.  왜씨네 집안은 이 강이름을 왜강이라고 부르고 싶어 온동네를 설득하고 다녔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얼마전부터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이 동강에는 아주 자그마한 낚시터가 있다.  조금 외롭게 떠있다고 해서 대한씨네 사람들은 독터라고 불렀다.  그런데 왜씨네는 자기 마음대로 이곳을 죽터’(다께바, 죽장,竹場)라고 부르며 자기네 터라고 우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뭐 까짓거 조그만 낚시터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곳 낚시터에서는 꽤 멀리 있는 여러 마을이 보였고, 게다가 동네간 싸움이 났을 때 연락과 싸움꾼 주둔지가 될 수 있는 중요한 곳이었다.

그런데 성격이 변한 김대한 씨는 왜씨네 가족에 기다려 달라는 식의 말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직도 그 소문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자식들이 점점 아버지를 불신하기 시작했다.  특히 여러가지 모습을 볼 때 아버지가 딴살림을 열심히 차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딴지라는 어린 녀석이 아버지, 첫째, 둘째, 넷째의 행동을 캐고 다녔다.

별것도 없는 조그마한 녀석이 정보를 캐고 그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퍼뜨리기 시작했는데 평소 아버지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다른 자신들이 딴지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사실 딴지가 이런 말과 행동을 하고 다닌지는 꽤 오래되었다.)

이 당돌한 녀석은 셋째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대들었다.  셋째가 이 상황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할말을 해야 되는데 왜 주저하느냐는 것이었다.

둘째와 넷째는 이 딴지가 너무도 밉고 맘에 안들었다.  왜냐하면 딴지는 아버지와 둘째가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했다고 떠들고 다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런 사실들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넷째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함께 떠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을 때…. 전미국씨에게 또 다른 제안이 들어왔다.

이제 때도 되고 그랬으니 아예 툭 터놓고 서로 장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첫째 아들은 일단 반가웠다.  예전같으면 범접할 수 없었던 위대한 전씨네 가문.  이제 그들이 적극적으로 장사를 하자고 손을 내밀어 온 것이었다.  첫째가 가지고 있는 사업은 이미 잘되고 있고, 전씨네 동네에도 여러 점포를 내서 운영하고 있던 터였다.  교역이 더 활성화되면 돈도 더 많이 벌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첫째에게는 아주 중요한 기회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언제 바뀔지 모르는 아버지의 마음을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지난 8년간의 아버지의 모습은 첫째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껏 잘 지내왔던 아버지가 왜 첫째인 나를 미워했을까, 지금껏 당연히 주던 혜택을 안주려 했을까.  아버지가 밉고 야속했던 적이 많았다.

그런데 전미국씨네와 교역 계약을 마무리 하고 나면 아버지의 성격이 어떻게 바뀌는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  첫째가 하는 사업에 관련된 모든 아버지의 명령과 규제는 앞으로 전미국씨와 함께 도장찍은 문서로 대체되기 때문이었다. 

첫째는 평소에 특히 용돈을 많이 챙겨 주었던 둘째에게 이야기 했다.  이건 우리 집안의 흥망을 가르는 중요한 문서니까 반드시 통과되도록 해야된다.  그리고 다행히 지금 아버지가 제정신이시니까 마음 변하기 전에 빨리, 지체하지 말고 통과 시켜야 된다.  얼마 안있으면 둘째와 셋째 중 어느쪽에 힘을 실어줄지를 애들이 결정하는 때가 오고 조금 더 있으면 아버지의 성격을 바꾸는 것에 대한 논의가 일어난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이 있기 전에 일을 처리해야 된다.  알았지?  우리 집안의 흥망이 걸린거다.

 

이렇게 빠르게 일처리가 진행되는 동안 꼼수와 셋째 아들을 중심으로 한 어린 자식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전미국씨네가 들어오면 일단 대부분의 자녀들이 하고 있는 품팔이, 농사등이 더 힘들게 될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둘째는 넷째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그것도 생각하고 대책을 마련할 것이니까 참고 기다려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

 

급기야 꼼수와 셋째를 중심으로 자식들은 마당으로 나갔다. 

이번에도 예외없이 다섯째가 앞을 가로막았다.  날씨는 이제 추워졌는데 지난번과 같이 머슴들에게 물뿌리개를 준비하게 했다.

설마했던 다섯째는 명령을 내렸고 자식들은 추운 초겨울에 흠뻑 물을 맞았다.  그리고 더욱 화가났다.

이 이야기는 현재 진행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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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일이 바빴던 것도 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나는대로 시사관련 정보를 접하다보니 블로그를 별로 쓰지 못했다.
특히 '나는 꼼수다'에서 시작한 최근의 정치에 대한 관심으로...

  나꼼수를 기다리면서 청취하고,
  수시로 트위터를 들여다보며,
  TV뉴스를 가끔보며 혀를 차고,
  한미 FTA등 정치외교 관련 자료를 검색하고...

이렇게 지내다보니.. 어느덧?  정치와 정치가십에 푹~ 빠져있는 나를 발견했다.

박원순 시장님의 당선, 그리고 한미FTA를 시간을 두고 검토하자는 것, 그리고 오늘 올라온 인천공항 매각 사실상 철회등 최근에 (잘은 모르겠으나) 나라가 제대로 잡혀가는? 듯한 소식에 나 역시 흥분하고 기뻐했다.
(혼자 아이폰 들여다보며 속으로 앗싸~! 하는 심정)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지금 내가 지지하는 생각들이 과연 맞는 것들인가? 나도 오히려 어떤 한편에만 서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내가 주관적 견해와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그냥 흐름에 호도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등등의 생각이 들어서 100% 즐거운 마음만은 아니었음을 고백해야겠다.



그중에 놓치지 않고 있는 생각이 있다.
바로 60대 이상의 노인, 어르신들이다.

사실 나에게도 평생을 조중동 신문만 보고 살아온 아버지가 계시다.  
얼마전 부모님 생신에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러 차를 몰고 가는 중에 아버지의 호통을 듣고 말싸움을 하기까지 했다.
몇년전에야 알게 되었다. 
아버지도 나라를 걱정하고 우리가족의 미래를 걱정하기 때문에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반대세력을 좌파로 여긴다는 것을....

우리 아버지는 정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한나라당의 무슨 행사에 참여해서 뭔가의 떡고물을 받은적도 없다.
아버지는 그냥 젊어서부터 열심히 일만 한 분이다.  외화를 벌기위해 중동에 두번이나 다녀온 분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언제나 '서민'이라고 생각하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돈을 아끼며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이며, 이제 나이가 먹어 지금하는 경비일도 언제까지 할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분이다. (물론 다른 분들처럼 실직으로 돈이 없을 것을 걱정하는 수준은 아니니 문제는 없지만...)

그런데 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생각은 정확히 아버지와 우리 가족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듯 하다.
그저 아버지는 삼성이 없으면 경제가 망하고, 한나라당이 아니면 나라가 빨갱이에게 접수되는 줄 아실 뿐이다. 
그런 프레임, 패러다임에 수십년을 갇혀 살아오셨다. 
그리고 아들을 보면서 진심으로 말씀하신다.  '얘, 너도 정신을 차리고 세상돌아가는 걸 알아야 되지 않겠니?'
그 진심어린 말씀을 들으면 정말로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냥 생각이 나서 '어버이 연합'을 검색해 보았다.
80~90세인 분들의 나이와 세대를 생각해 보았다.   전쟁을 겪으셨고, 밥을 굶었으며, 가족이나 사랑하는 누군가가 괴뢰 공산군 손에 죽었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소식에 참호속에서 만세를 외쳤을 수도 있고, 목숨을 걸고 한강을 수복하고 북진한 용감한 청년이었을 수 있다.   공산주의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온몸으로 체험한 분들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직후에는 경제한번 살려보겠다고, 가족 먹여살리겠다고, 해외 나가서 번듯하게가 아니라 피땀 흘리며 힘들게 일해왔다. 
구질구질하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사의 사막에서 몇년을 떨렁 가족 사진 한장 보며 버티셨고, 운좋으면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을 해서 가족들에게 보내며 답장을 기다리는 재미로 살았다. 
그리고 애들은 굶기지 않고 교육시키겠다고 성질 급하게 살다보니 몸에 그 습관이 배었다.  남을 배려하기에는 바쁘게, 부지런히 살아야되는 절체절명의 사명감이 필요한 시절이었다. ...

그리고 이렇게 살아온 분들은 지금,
재벌, 언론, 정치권의 프레임에 갇혀 다음 세대에 해로운 (아니 꼼수식으로,, 해로울 것으로 추정되는 ...) 방식을 그냥 고집하고 있다. 
왜?  그게 다음 세대에 좋을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니까. (아닌 분도 있겠지만)


우리는 지금 정보 역전의 시대를 살고 있다.
즉, 진짜 정보는 어른들께서 근엄하게 펼쳐보시는 조중동 신문에 있기보다는 수많은 해외 언론, SNS속에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뭐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어른들에게는 그 진짜 정보에 접근하는 방법이 별로 없다.

그래서 얼마전 아버지께 MP3 플레이어에 트로트를 많이 넣어드리고 남는 공간에 '나꼼수'를 넣어 두었다.
나꼼수가 100% 진실만을 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몰랐던 관점을 폭풍처럼 쏟아주니까 좋을 뿐이다.
이걸 듣는다고 아버지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지는 않으실 것이다.  수십년 믿어온 신념이 깨지기는 쉽지 않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이런 반대편의 의견도 있다는 것을 한번쯤 아시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나름의 결심을 한다.  아버님이 걱정하고 노심초사하시는 '아들과 손주가 잘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현재의 아버지는 내가 정반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신다.)

그리고 또하나.  지하철에서 예의 없게 호통치고 시끄러운 노인분, 손부터 뻗쳐서 교통카드를 찍는 대책없는 아주머니, 좌빨을 외치는 어버이 연합... 이런 분들을 만났을 때 눈쌀부터 찌푸리기 보다는 그분들의 살아온 역사를 생각하며 이해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동의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니까.   
조금 과장해서 보면, 지금의 60대 이상의 세대가 없었다면, (여전히 문제는 많지만) 세계 10위권을 바라보는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분들을 이해하고 안아드릴 필요가 있다. 
'선동되고 세뇌되어' 피켓을 들고 가스통을 드는 용사의 뒷모습 중에는 궁핍하고 불안하고 외로운 노인의 모습도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살아온 시절에 경험하신 신념의 위에 체계적인(?) 정보가 수십년간 들어와서 거기에 맞는 행동을 '진심으로' 하고 있을 뿐일 수도 있다.
.

나는 정말 소수의 몇몇 집단을 제외한 모두는 '모두가 잘사는 대한민국'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몇몇 집단은 오히려 자신의 특권이 계속 유지되기를 바라겠지..)
다만 어떤이는 진실을 먼저 보았고, 누구는 진실을 보기에는 너무 기존의 생각이 굳어져 있을 뿐이다.  
진실을 보지 못한 이와 싸우기 보다는 참고 기다리자.  
진실을 먼저 본 사람은 반대편과 입씨름하고 비아냥 거리는 것보다 진실을 더 많이 잘 말해주고 퍼뜨리는 것이 훨씬 나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건 그렇고.. 이제 정치를 조금 알고, 진실도 조금 알았는데.. 여전히 많은 실천을 하지 못하는 것은 좀 스스로에게 창피한 마음이 든다.  적절한 때가 되면 나도 내 방식의 기여를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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