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때문에 일이 안되는지를 알려고 하면 뇌는 필사적으로 그 이유를 찾아온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갈망하는 지를 생가갛게 되면 그것을 생각게 된다.
"난 왜 이모양이지"??"하고 생각하면 뇌는 그것에 적절한 이유를 가져다 준다.
그것이 축적이 되나면 뇌는 자신이 선택하기 편한 생각의 집합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이 '신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에 걸쳐 누적된 그 생각인 신념을 배신하는 어떤 사건이나 아이디어는 왜곡해서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신념을 무시하고 새로운 생각을 채택한 다는 것은 자신을 지금까지 지탱해준 무언가를 잃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떄로는 잘못된 신념인것 같다... 는 막연한 생각이 있음에도 그것이 없어지면 정체성의 위기를 겪거나 심적 부담을 느끼게 될 것 같아서 오히려 그것을 놓지 못하는 비이성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이러한 뇌와 이성의 작용에 더하여 실제적인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인자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감정'이다.
사람은 이성적으로는 충분히 생가갛고 말로는 할수 있지만 감정이 함께 동반하지 않는 경우는 행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생각만을 가지고 행동에 옮기는 것을 우리는 '의지가 강하다' 고 말한다. 즉, 원하지는 않지만 왠지 그래야 될 것같으니까 하는 것,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을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를 하게된다.
그렇기 때문에 의지를 사용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추진력이 떨어지고 더 중요한 것은 그 행위의 과정이나 결과가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다는 점이다.
한국의 70년대에는 의지로 성공한 사람이 많았다.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표현이 아주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의지를 가지고 성공한 사람들이 행복한가하는 것이다.
물론 행복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정과 결과 모두 행복한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반대로 생각과 감정이 일치해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몰입'이라는 표현을 쓰겠다.
(몰입이라는 영역에 저명한 연구가 많아서 함부로 단어를 붙이기는 쉽지 않다.)
여튼, 이 몰입이라는 상황으로 들어가면 과정과 결과가 모두 만족스럽고 즐겁게 된다.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해야지"라는 생각없이 그냥 행동에 옮기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감정까지 함께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를 찾기가 의외로 쉽지 않고 몰입이라는 단계에 들어가기 까지는 일련의 훈련과정, 도입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랗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을 찾도록 하는 과정에는 코칭이라는 서비스가 있고 몰입에 들어가기 위해 몰입을 훈련하는 코스가 별도로 존재한다.
이성과 감성이 합쳐진 목표를 세웠을 때 인간은 위대한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게 된다.
자신이 이 일을 왜하는지에 대한 것이 스스로 명확해야만 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교육을 바라보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힘들지만 나중되면 다 알아 왜 이게 중요한지"
라는 말로 설득을 한다. 물론 맞는 면도 있다. 맛있는 사과의 속살을 먹기 위해서는 겉에 둘러싼 껍질을 까야 하는 수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그렇게 바라보고 아이들의 개성을 무시한다면 교육은 아이들게게 돌이킬수없는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사실 기성 세대가 지금까지, 현재도 아이들에게 많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철저히 뒤돌아 보아야 한다.
다양한 경험, 그리고 긍정성과 가능성을 바라보는 뇌의 생각, 거기에 더해 감정이라는 추진력이 생기면 인간은 어떤 장애물이라도 극복하고 위대한 드라마를 쓸수 있게 된다.
주로 신체적 장애를 극복했거나, 잠을 자지 않는 사람들이 뉴스에 나오고 책을 쓴다.
그것은 분명 위대한 그리고 영감을 주는 이야기 지만 그 사람과 자신을 일대일로 비교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성공과 나의 성공이 같은 모델일 필요가전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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