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창의력.
LG전자에 몸 담았던 사람으로서 삼성전자는 참으로 묘한 기분을 주는 회사다.
자랑스러운 한국의 IT기업 양대 산맥, 그러면서도 '정말?'이라는 주위 시선에 신경을 써야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을 쓰지만 지금까지 혁신적인 상품과 기술개발로 세계시장을 놀라게 한 사례들은 수없이 많다. 휴대폰에서도 놀라운 내구성과 시장의 니즈에 맞는 전략폰으로 한땀한땀(?) 노키아의 뒤를 추격해 가는 모습이 대단했다.
그랬던 것이 '스마트 폰'에서 발목을 잡혔다는 기사를 필두로 이슈화 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의 상황을 거울 삼아 다음에 더 좋은 제품을 생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는 '기업 문화'라고 하는 것이다. 기술을 더 많이 개발해서 조금 더 나은 제품, 조금 더 나은 디자인, 조금 더 나은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기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 하지만 틀을 깨는, 그러면서도 모두가 원하는 제품을 곧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여기에는 강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기술력이라기 보다는 '창의력' '창의적 조직 문화'이기 때문이다.
애플의 제품을 보면 '혜성처럼 떨어진 독보적 기술력'으로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기존에 있는 훌륭한 기술을 잘 활용하여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아이디어는 자체적으로 내었지만 기술력은 좋은 것들을 빌려왔다는 것이다. (심지어 소프트웨어와 컨텐츠마저도 그렇다.)
이번 기회로 '혁신과 창의력'의 진정한 의미와 조직문화에 대해 잠시 숨을 고르면서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맥북에서 작동하지 않는 2009년産 삼성 프린터를 딱하게 바라보며 글을 쓰고 있다.)
"삼성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이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
지난해 12월 중순, 그룹 내 언론 역할을 하는 '미디어 삼성'에 올라온 '1등 기업의 함정'이라는 기사 내용의 일부다. 그룹 커뮤니케이션팀이 직원들의 목소리를 담아 자체 문제점을 지적한 이 기사는 "과거 성공의 법칙이 덫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삼성은 최근 이 기사를 방송으로 제작, 전 직원들이 볼 수 있도록 내보내기도 했다.
추격자 전략의 실패로 든 사례는 스마트폰이었다. 기사에 등장한 한 직원은 "앞으로 본격적으로 출시할 A플랫폼 기반제품은 훨씬 빨리 내놓아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A플랫폼 회사가 우리쪽에 먼저 제안을 해왔다"고 말했다. 윈도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폰 개발에 주력하던 삼성에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폰을 개발하고자 제안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제안은 검토 과정에서 수용되지 않았다. 구글은 대만 HTC와 손잡고 첫 번째 안드로이드폰을 내놓았다. 삼성은 왜 구글폰을 거부했을까. 이 직원은 "뒤늦게 A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제품 개발에 뛰어들었다. 왜 우리는 꼭 성공모델이 있어야 도전하는 것인지,과연 우리가 진정한 1등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삼성이 구글폰에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은 '최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얘기다. 시장이 형성된 곳에 자금과 인력을 집중 투입해 1위를 만들었던 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다른 개발자도 "우리는 뭔가 창조적 제품을 만들 필요가 없었고 만들어서도 안됐다. 성공 사례들을 벤치마킹해 성장해왔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A연구원은 "개발하다 보면 가끔 정말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런 아이디어를 내면 '뜬구름 잡지 말고 다른 거 생각해봐! 바로 시장에 낼 수 있는 걸로…' 라는 반응이 나온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직원은 "잘 만들면 획기적 상품이 될 수 있는데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직원들에게 화제가 됐던 이 기획기사는 '성공의 덫,창조의 조건,한국식 문화' 등 3부로 구성돼 있으며 삼성 기업문화의 문제점을 과감히 지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계열사 사장은 "이런 기사를 쓴 것은 작지만 큰 변화"라며 "이런 움직임이 새로운 10년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