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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의 화법, 사투리는 꼭 고치지 않아도 됩니다 — 고칠 것과 살릴 것은 질문 하나로 갈립니다

요약 고칠 것과 살릴 것은 질문 하나로 갈립니다. 알아듣기 어려운 것은 고치고,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살립니다. 사투리는 대부분 살릴 쪽입니다. 억양을 살리면 자기 말투를 감시하는 데 쓰던 힘이 내용으로 돌아옵니다.

일 잘하기로 소문난 담당자가 한 분 계셨습니다. 부장이었고, 미국 법인의 프로덕트 매니저였습니다. 부산 출신이었습니다. 그분이 발표하는 것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좀 놀랐습니다. 부산 사투리를 그대로 썼습니다. 억양을 다듬지도 않았고, 표준어로 바꾸려는 시도도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노필터였습니다.

그날 회의는 가벼운 회의가 아니었습니다. 중남미에 싸게 공급한 물건을 정식 거래선이 아닌 업체들이 미국으로 들여와 팔았습니다. 병행수입입니다. 그 바람에 미국에서는 정상 가격을 낮춰야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그 문제를 놓고 모든 지역 담당자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분은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핵심만 짚고 끝냈습니다. 반응이 계속 터졌고, 그 회의에서 가격을 맞춰 주기로 하고 승인까지 바로 났습니다.

그 뒤로 저는 사투리 쓰는 분을 만날 때마다 하는 말이 생겼습니다. 그 말이 무엇인지는 글 끝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날 회의를 끝낸 것은 다섯 글자였습니다. 그 다섯 글자는 본문에서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 방에서 가장 안 다듬어진 말투였습니다

이런 적 있으실 겁니다. 발표 전에 억양을 신경 쓰다가 문장이 뻣뻣해집니다. 목소리가 단조롭다는 말을 듣고 톤을 올려 녹음을 들어 보니 내 목소리가 아닙니다. 말투가 딱딱하다는 피드백에 웃으면서 말했는데, 진지한 대목이어서 표정과 말이 어긋납니다.

그런데. 세 장면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자기 특징을 깎아서 표준에 맞추려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걸 깎아 내기라고 부릅니다.

저는 20년 넘게 프레젠테이션을 코칭했습니다. 고객사는 140여 곳이고 그중 32개사가 포춘 500대 기업입니다. 그러면 발음 교정 이야기가 나오겠구나 싶으실 겁니다. 아닙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고칠 것과 살릴 것을 가르는 질문 하나를 가져가시게 됩니다. 애써 온 것 중 대부분이 살릴 쪽이라는 것도 보시게 됩니다.

표준어로 말했다면 더 잘 통했을까요

발표 교육에는 표준이 있습니다. 발음은 또렷하게, 톤에는 변화를, 속도는 적당히. 이 표준은 유용합니다. 평균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평균적으로 안전한 것과 그 상황에서 가장 잘 통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날 그분이 표준을 따랐다면 아마 이랬을 겁니다.

"여기 보시는 것처럼 병행수입을 하는 업체가 내놓는 가격이 10불 이상 저렴합니다. 그래서 정식 루트로 판매하는 제품의 가격이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수익성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 거래선과의 신용이 계속 악화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남미에 공급하는 제품의 가격을 여기 북미 가격과 동일하게 맞춰 주셔야 합니다. 형평성에서 많이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틀린 데가 없습니다. 논리도 맞고 숫자도 있습니다. 무난했겠지만 기억에는 남지 않았을 겁니다.

실제로 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 보이소. 병행수입하는 아덜이 10불 더 쌉니다. 가격이 안맞지요. 수익성도 문제지마는 거래선하고 신용이 망가지고 있다 아입니까. 가격 좀 맞춰주이소. 중남미에서 북미로 가와가 파는데 10불 싸믄, 이거 대체 얼마에 주시는 겁니꺼? 살려주이소."

같은 내용입니다. 10불, 수익성, 거래선 신용, 가격을 맞춰 달라는 요청. 하나도 빠진 게 없습니다. 길이는 절반입니다. 그리고 그 방에서 가장 안 다듬어진 말투가 가장 잘 통했습니다.

사람은 너무 다듬어진 말을 의심하고, 덜 다듬어진 말을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너무 매끄러우면 듣기 좋게 고른 말일 수 있다고 의심받습니다. 억양이 남아 있다는 것은 꾸미지 않았다는 신호입니다.

다만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사투리 때문에 잘된 게 아닙니다. 그분은 10불이라는 숫자를 알았고, 중남미 담당이 어디까지 내줄 수 있는지 알았습니다. 잘된 이유는 준비였습니다. 사투리는 그 준비된 내용이 꾸밈없이 전달되게 했을 뿐입니다.

억양을 살린다고 발표가 저절로 잘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억양을 살리면 자기 말투를 감시하는 데 쓰던 힘이 내용으로 돌아옵니다. 발표를 잘되게 하는 것은 그 힘입니다.

길이는 절반, 빠진 내용은 없었습니다

고칠 것과 살릴 것은 질문 하나로 갈립니다

그렇다고 다 그냥 두라는 말은 아닙니다. 기준이 하나 있습니다. 알아듣기 어렵습니까.

알아듣기 어려운 것은 고칩니다. 발음이 뭉개져서 단어가 안 들리는 것, 말끝을 삼켜서 문장이 안 끝나는 것, 속도가 너무 빨라서 따라올 수 없는 것. 이건 개성이기 전에 전달의 문제입니다.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살립니다. 억양, 목소리 높낮이, 말의 리듬, 특유의 표현이나 어휘. 이건 전달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억에 남게 합니다.

사투리는 대부분 살릴 쪽에 들어갑니다. 억양이 다르다고 못 알아듣지는 않습니다. 못 알아듣는 것은 발음이 뭉개질 때입니다. "살려주이소"를 못 알아들은 사람은 그 방에 없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다섯 글자가 이것입니다. 그러니 사투리를 쓰는 분이 고칠 것이 있다면 그건 사투리가 아니라 발음의 또렷함입니다. 억양은 부산 그대로 두고 발음만 또렷하게 하면 됩니다.

말투가 서로 정반대인 사람들을 떠올려 보셔도 됩니다. 말이 빠르고 경쾌한 방송인 노홍철, 천천히 진중하게 말하는 최재천 교수와 김상중. 누구도 자기 말투를 고쳐서 거기까지 간 것이 아닙니다. 당신 말투의 절반은 문제가 아니라 특성입니다.

살리기로 한 것은 어중간하게 두지 마십시오. 사투리를 반쯤 고치면 사투리도 아니고 표준어도 아닌 것이 됩니다. 듣는 사람은 그 어색함을 먼저 알아챕니다. 그러면 자기 말투를 부끄러워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둘 중 하나를 고르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완벽하게 고치시든지, 그냥 쓰시든지. 완벽하게 고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들고, 그 시간은 내용 정리에 쓰는 편이 이득입니다. 고쳐도 얻는 게 적습니다. 표준어를 쓰는 사람 한 명이 될 뿐이고, 기억에 남을 특징 하나를 잃습니다.

고칠 것과 살릴 것은 질문 하나로 갈립니다.

알아듣기 어렵습니까

정도가 심하면 한 가지만 하십시오

억양이 강한 말은 빠르면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같은 억양이라도 천천히 말하면 대부분 알아듣습니다. 억양이 문제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속도가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침묵도 여기서 도움이 됩니다. 문장 사이를 비워 주면 듣는 사람이 따라잡을 시간이 생깁니다.

억양은 그대로, 속도는 천천히, 사이는 비워서. 여유가 되시면 하나를 더 하십시오. 중요한 단어만 또박또박 발음하는 것입니다. 한 문장에서 정말 중요한 단어는 한두 개뿐입니다. 제품명, 숫자, 결론에 해당하는 동사. 그분의 문장에서는 "10불"과 "맞춰주이소"였습니다.

나머지는 평소대로 하셔도 상대가 다 알아듣습니다. 사람은 문장의 절반쯤은 맥락으로 채워서 듣기 때문입니다. 맥락으로 못 채우는 것이 고유명사와 숫자입니다. 말이 빠른 분도, 영어로 발표하시는 분도 같습니다. 속도를 통째로 늦추거나 한국식 억양을 없애려 애쓰지 마십시오.

말투는 달라도 되지만 자세와 손은 다릅니다

자세와 손에는 거의 모든 문화에서 통하는 기본이 있고, 어기면 그냥 손해입니다. 손은 배꼽 앞에 편하게 모아 두는 것이 기본입니다. 팔짱은 방어적으로, 주머니에 넣은 손은 격식 없어 보이고, 뒤로 낀 깍지는 멀어 보입니다. 이건 개성이 아니라 신호이고, 말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전달됩니다. 제스처는 자주 쓰지 말고, 쓸 때는 어깨 너비보다 크게 쓰고 끝에 잠깐 멈추십시오.

표정이 풀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는 사투리를 쓰거나 억양이 남아 있는 분을 만나면 늘 같은 말을 합니다. 그 말은 글 끝에 적겠습니다. 그 말을 드리면 대부분 표정이 풀립니다. 오랫동안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 온 것을 안 고쳐도 된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그다음부터 발표가 달라집니다. 억양이 바뀌어서가 아닙니다. 자기 말투를 감시하지 않게 되니까 내용에 집중할 여유가 생기는 겁니다. 제가 가르치는 것은 대개 이런 쪽입니다.

당신이 깎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억양이나 사투리를 깎고 계신 분. 억양은 두고 속도와 또렷함만 보십시오.

낮고 단조로운 목소리를 깎고 계신 분. 톤을 올리지 마십시오. 낮은 목소리는 사이를 비울 때 무게가 됩니다.

딱딱한 말투를 깎고 계신 분. 부드럽게 바꾸려 하지 말고 더 정확하게 말하십시오. 간결하고 정확하면 딱딱한 말투도 신뢰가 됩니다.

빠른 말을 깎고 계신 분. 빠른 말에 실린 에너지는 흉내로 나오지 않습니다. 숫자와 결론에서만 내려놓으면 됩니다.

넷 다 고칠 것이 아닙니다. 질문은 하나입니다.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당신의 말을 못 알아들은 적이 실제로 있었습니까.

30초 실천

우선은 고치려고 애써 온 것 하나를 떠올리고, 그 질문에 답해 보십시오. 없다면 그건 고칠 것이 아니라 살릴 것입니다.

못 알아들은 적이 실제로 있었습니까

고칠 것이 있다고 생각되면 그 특징보다 또렷함이나 속도를 먼저 의심해 보십시오. 그것도 어려우면 다음 발표에서 숫자 하나만 또박또박 말해 보십시오. 그 한 단어면 시작입니다.

사투리 쓰는 분을 만날 때마다 하는 말

글 머리에서 약속한 대목입니다. 제가 하는 말은 이것입니다.

"둘 중 하나입니다. 사투리를 완벽하게 고치시거나, 사투리 억양을 활용하시거나. 저는 후자를 지지합니다."

"살려주이소." 그 한마디로 그날 회의는 끝났습니다. 의사결정자가 모두 모였던 회의였기에 가격 조정이 바로 이루어졌습니다. 잘 다듬어진 많은 문장이 할 일을 다섯 글자가 했습니다. 그분이 말을 잘해서만은 아닙니다. 자기를 억지로 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앞의 두 편과 이 편은 결국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침묵은 소리를 채우지 않는 것, 포스트잇 한 장은 종이를 늘리지 않는 것, 그리고 이 편은 자기를 깎지 않는 것입니다. 셋 다 더하는 일이 아니라 덜어 내는 일입니다.


부족한 것을 채우기 전에, 이미 가진 것을 가리고 있는 것부터 걷어 내십시오.

고칠 것과 살릴 것은 질문 하나로 갈립니다.

이 글은 전자책 『다 말하지 마세요』의 연재입니다. 전체 원고는 스마트스토어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smartstore.naver.com/petercomm/products/13788987324

한창훈 · 피터의 커뮤니케이션

한창훈 · 피터의 커뮤니케이션19년째 전문가와 사업가, 임직원의 발표와 소통을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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